한창 자랄 나이에는 부모님의 어떤 외모를 닮았는지가 화두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나의 미운점 혹은 미세하게 특출 난 점들을 연관시켜 보게 되었다. 봉사를 갔던 보육원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채 12개월도 되지 않은 간신히 옹알거리는 아기들도 똑같은 상황에 놓이면 성격이 제각각이다. 분명 부모의 유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의 신비란.

초등학생 때에는 키가 작았다. 마트에 가면 칼슘이 1g이라도 많은 우유를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한 키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빠의 자식임을 인정했다. 윤수빈의 아빠인 윤규철 씨는 5남매 중 막내이지만 키가 가장 크다. 신기하리만치 혼자만 크다. 풍성한 머리숱도 윤규철 씨가 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세상의 모든 아빠는 머리숱이 풍성한 줄만 알았다. 남성 탈모 시장이 이렇게나 거대한 줄은 성인이 된 이후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단 한 번도 탈모 샴푸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꽂히면 무섭게 집요한 면도 윤규철 씨가 주었다. 윤규철 씨는 좋아하는 게 많은 어른이다. 정확히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 범위는 꽤나 다양하다. 유추하건대 청년 시절에는 전기 혹은 컴퓨터였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내게 전기가 통하는 모든 것을 뚝딱뚝딱 고치는 만능맨이었다. 설명서가 없는 해외 냉장고나 스마트폰도 고쳤다. 물론 전기가 통하지 않는 것들도 손재주가 좋아 모두 고쳐냈다. 요즘은 누군가 재활용장에 버려놓은 멀쩡하지 않은 것을 주워와서 멀쩡하게 만드는 소소한 재미를 보곤 한다. 다량의 식물 키우기는 기본이요, 천연 막걸리를 만들고 소소한 유리 공예도 한다.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삶에 담담하게 끌어당기는 그 힘은 분명 윤규철 씨가 나에게 준 것이다. 

엄마인 최은정 씨는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다. 나의 여동생은 어릴 적 사람들의 '아빠 닮았네'라는 말에 슬퍼했다. 아빠를 닮은 게 싫은 게 아니라, 엄마를 닮지 않은 게 속상했던 것이다. 짙은 쌍꺼풀과 높은 코는 우리 자매에게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똑 닮은 외모가 미스터리 한 부분이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다분히 필요한 다정함과 성실함을 주었다. 그 두 가지가 적절히 뭉치니 지혜로 발휘될 때가 많았다. 최은정 씨의 삶에 있어서 거만이나 나태라는 단어는 절대 접착될 수 없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줄 알았다. 밤늦게 퇴근하는 날에도 메추리알 장조림 반찬은 늘 직접 삶아서 껍질을 깠다. 일주일 동안 메뉴가 겹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감자탕도 한다. 분명 나에게 요리하는 재주를 주었을 수도 있으나, 아직까진 나의 의지가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딸아이 둘이 가장 말도 탈도 많을 시기에 혼자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집안일을 서툴게 한 적이 없었다. 다정한 성격 탓에 미움받는 일도 없었다. 다정함은 총명함이다. 그 능력을 떼어서 나에게 주었다. 사람을 대하는 과정에서 크게 사고가 있거나 미움을 받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심히 부드럽거나 적당히 무관심한 관계들 속이었다. 이다음에 해야 할 이야기는 윤규철 씨와 최은정 씨에게 받은 적당히 미운 부분들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이만 마치려 한다. 맞다. 좋은 것만 보려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문득, 그들에게 받은 것들을 세어보며 다시금 겸손해지는 생각을 얻는다. 나의 우주는 태어난 해에 시작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만하지는 않았는지 헤아려보는 밤이다.